“모든 해석은 플레이어의 자유다. 다른 해석은 있어도 틀린 해석은 없다.” — 미야자키 히데타카


블러드본을 하고 있다. 대두족장의 스토리 해설 영상을 보고 나서 이 게임이 생각보다 훨씬 깊다는 걸 알았다.

스토리를 정리하면서 두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1. 이 세계는 층위로 되어 있다. 껍질을 벗길수록 다른 게임이 된다.
  2. 불교적 개념으로 읽으면 비극의 구조가 유난히 선명해진다.

30초 배경

블러드본 스토리를 모르는 사람을 위해 최소한만.

  • “야남”이라는 도시가 있다. “위대한 자”라는 신급 존재들이 있다.
  • 학자들이 신의 피를 발견하고, 신처럼 되려고 온갖 실험을 했다. 전부 재앙으로 끝났다.
  • 피의 부작용으로 사람들이 짐승으로 변하는 “야수병”이 퍼졌다. 이걸 처리하는 전문가가 “사냥꾼”이다.
  • 현실과 악몽이 다른 차원으로 존재한다. 현실에서 죽은 자가 악몽에서는 살아있을 수 있다.
  • 신들은 전부 아이를 잃었고, 죽은 아이를 붙잡아두기 위해 악몽을 만든다.
  • 플레이어는 사냥꾼으로 이 세계에 투입된다.

이 정도면 아래 내용을 따라올 수 있다.


껍질을 벗길수록 다른 게임이 된다

블러드본을 처음 하면 야수병이 퍼진 도시에서 괴물을 잡는 액션 게임이다.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껍질을 벗기면 층위가 드러난다.

표면 — 병든 도시와 괴물 사냥. 치유 교회는 신의 피로 만병을 고쳐주며 시민들의 환심을 산다. 사람들은 구원받는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피가 사람을 야수로 만든다. 구원처럼 보이는 시스템이 인간을 소모품으로 갈아 넣는 구조.

그 위에 — 신의 질서가 겹쳐 있다. 야남 위에는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또 다른 층이 있다. 위대한 자들은 인간의 도덕으로 선악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각자 욕망이 있고, 아이를 잃은 상실이 있고, 악몽을 만들 힘이 있다. 인간은 그 세계를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 힘만 탐낸다. 악몽은 환상이 아니라, 신이 실제로 만들어낸 다른 층의 현실이다.

인간 엘리트들은 신의 질서를 흉내 낸다. 비르겐워스 학자들이 신의 피를 발견하고 나서 네 파벌로 쪼개진다. 스승인 윌렘 학장은 “피는 위험하다, 내면의 눈을 떠서 통찰로 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제자들은 듣지 않았다.

  • 로렌스는 피를 약으로 써서 치유 교회를 세웠다. 야수병이 터졌다. 본인도 야수로 변해 죽었다.
  • 미콜라시는 신한테 직접 연락하면 되지 않냐며 의식을 벌였다. 학파 전원이 몰살당했다.
  • 성가대는 낙오된 신과 손잡고 고아원 아이들로 인체 실험을 했다.

방법은 달라도 패턴은 같다. 인간이 자기 그릇보다 빨리 신의 반열로 올라가려는 시도. 결과는 하나같이 야수병, 광기, 몰살, 악몽.

사냥꾼은 영웅이 아니라 시스템의 소모품이다. 야수병의 뒤처리를 맡은 전문가지만, 피에 가장 깊이 노출되어 가장 빨리 망가지는 직업이다. 최초의 사냥꾼 게르만은 신에게 붙잡혀 꼭두각시가 됐다. 영웅 사냥꾼 루드빅은 끔찍한 야수로 변했다.

플레이어도 처음부터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다. 피의 치료를 받은 순간 “사냥꾼의 꿈”이라는 악몽에 편입된다. 시키는 대로 야수를 사냥하다가, 보호막이 걷히면 핏빛 하늘과 숨어 있던 신들의 형체가 드러난다. 괴물 사냥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신의 질서가 덮인 세계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는 걸 보게 된다.


불교로 읽으면 보이는 것

블러드본은 불교 게임이 아니다. 러브크래프트식 우주 공포와 고딕 호러에 더 가깝다. 하지만 불교적 개념으로 읽으면, 이 게임의 구조가 유난히 선명해지는 부분이 있었다.

고(苦) — 신도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블러드본의 세계에서 고통받지 않는 존재는 없다. 시민은 야수병으로, 사냥꾼은 끝나지 않는 밤으로, 학자는 광기로 망가진다. 신급 존재인 위대한 자조차 잃어버린 아이 때문에 괴로워한다.

모두가 더 높은 곳에 가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위로 올라갈수록 고통의 형태만 바뀔 뿐이다. 고통은 지위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조건이다.

무명 —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블러드본의 인간들은 위대한 자가 무엇인지, 오래된 피가 무엇인지, 자기 그릇이 어디까지인지 제대로 모른다. 그런데도 안다고 믿고 손을 댄다.

비르겐워스, 치유 교회, 맨시스 학파, 성가대는 방법만 다를 뿐 공통적으로 “무지를 인정하지 못한 채 초월을 서두른다.” 스승인 윌렘만이 “오래된 피를 두려워하라”고 했지만, 제자들은 듣지 않았다. 모른다는 걸 인정했으면 시작도 안 했을 재앙을, 안다고 믿었기 때문에 벌인 것이다.

집착 — 놓지 못해서 악몽이 생긴다

인간은 더 높은 존재가 되기를 갈망하고, 신들은 잃어버린 아이를 갈망한다. 모두가 무언가를 원하고, 그 원하는 마음을 놓지 못한다.

게임의 핵심 악몽들은 신이 만들었고, 아이와 관련이 있다. 코스는 죽은 아이를 다른 차원에 붙들어 두고, 여왕 야남은 잃어버린 머고의 빈자리를 메우려 한다.

악몽은 단순한 공포 공간이 아니다. 놓지 못하는 마음이 굳어버린 형태다. 유식사상의 일체유심조 — 마음이 세계를 만든다는 명제의 가장 어두운 버전이다. 집착이 생각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 차원이 된다.(유식에서 식(識)이 세계를 구성)

업 — 행위는 사라지지 않고 돌아온다

어촌에서의 만행은 과거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냥꾼의 악몽이라는 형태로 계속 남아서, 가해자와 그 후예들을 붙잡는다. 게르만이 사냥꾼의 꿈에서 잠꼬대하며 괴로워하는 건, 어촌에서 벌인 일의 업이 차원을 넘어 따라온 것이다.

블러드본에서 저주는 단순한 마법적 벌이 아니다. 저지른 행위가 세계에 흔적을 남기고 결국 되돌아오는 구조다. 그리고 이 비극 중 단독으로 발생한 것은 하나도 없다. 투메루의 접촉이 비르겐워스의 발견을 낳고, 그것이 치유 교회를 만들고, 야수병을 퍼뜨렸다. 모든 재앙은 이전 행위의 조건 위에서 피어났다(緣起).

혜(慧) — 그릇 없는 통찰은 광기가 된다

블러드본의 핵심 키워드는 “통찰(Insight)”이다. 통찰이 올라가면 보이지 않던 신의 형체가 드러난다. 더 많이 보면 더 높은 진실에 이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게임은 오히려 그릇이 준비되지 않은 통찰은 광기로 간다고 말한다. 학자들은 통찰을 억지로 높이려다 미쳐버렸다. 사냥꾼들은 피에 취해 인간성을 잃었다.

불교에서 지혜(慧)는 수행과 그릇이 함께 따라가야 한다. 블러드본의 인간들은 준비되지 않은 채 억지로 눈만 더 뜨려 했다. 그래서 통찰이 해탈이 아니라 파멸로 이어졌다.

윌렘 학장이 “속 빈 진화는 우리 종족을 파멸시킬 것이다”라고 경고한 이유다.

윤회 — 끝난 것 같아도 반복된다

사냥은 끝난 것 같지만 또 반복될 수 있고, 악몽은 사라진 것 같지만 다른 형태로 이어질 수 있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위대한 자는 같은 상실을 되풀이하고, 사냥꾼은 같은 구조 속에 다시 끌려 들어간다. 고대 투메루 문명이 위대한 자가 되려다 멸망했고, 비르겐워스 학자들이 똑같이 반복했다.

자각 없이는 같은 바퀴가 돈다.


죽어서 배우는 게임, 넘어져서 배우는 삶

블러드본을 하면서 아래 내용을 배우고 삶을 배우고자 한다.

  1. 준비도 안 됐는데 무모하게 덤벼들다 죽는다.
  2. 툭하면 불합리하다고 화를 내고 남 탓을 하며 승률을 오히려 떨어뜨린다.
  3. 차근차근 상식대로 하면 금방 끝날 걸, 오히려 욕심 부리고 서둘러서 오래 끈다.
  4. 한두 번 해보고 너무 어렵다 싶으니 게임이 나쁘다고 욕하며 그만둔다.
  5. 왜 죽는지 배우지 못하면 같은 실수를 하며 계속 죽는다.
  6. 견뎌내고 하다 보면 도전 욕구가 커지고, 상식대로 성장해서 해낼수록 성취감도 커진다.
  7. 한 번 끝까지 해보면 다른 게임은 싱거워진다.
  8. 해볼수록 난이도가 내려간다.
  9. 참 맛을 아는 사람만 계속 한다.
공유하기𝕏f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