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은 필연의 세계와 우연의 세계가 공존하고 맞물려 있는 세계라 말할 수 있다. 째즈 음악의 모든 요소들은 지극히 우연적이고 즉발적이고 예측불허한 것 같이 보이지만 그것을 지배하는 음의 법칙은 매우 제한된 수학적 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우연은 필연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생명의 세계에는 이런 필연과 우연의 요소가 양립하고 있다. 필연은 통제가능한 제한된 법칙의 세계라는 뜻일 뿐, 그것이 어떤 초월적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제한된 법칙의 요소들의 상호관련에서 발생하는 세계는 무한히 다양하다는 것이다. 째즈코드의 순환 속에도 화성이나 스케일을 진행시키는 방식은 무궁무진하다. 피아노 건반은 매우 제한된 것이지만 거기서 발생하는 멜로디, 리듬, 화성의 세계는 무한의 변주가 가능하다. 필연과 우연, 필연과 자유는 서로 연결되어있는 연속적 일체이지, 그것이 2원론적으로 유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필연과 우연의 교차점: 더 깊은 탐구
이 관점은 동양 철학과 현대 과학에서 동시에 발견됩니다. 양자역학에서 입자의 위치는 확률(우연)로 기술되지만, 그 확률 자체는 슈뢰딩거 방정식이라는 필연적 법칙을 따릅니다. 마치 재즈 연주자가 코드 진행이라는 구조 안에서 자유롭게 즉흥 연주를 하는 것처럼, 우주도 법칙이라는 필연 위에서 무한한 우연을 펼칩니다.
불교의 연기(緣起) 사상도 이와 닮아 있습니다. 모든 것은 조건에 의해 발생하지만(필연), 그 조건의 조합은 무한히 다양합니다(우연). 씨앗이 땅에 떨어지는 것은 중력이라는 필연이지만, 어디에 떨어지느냐는 바람이라는 우연입니다. 그리고 그 우연이 다시 필연의 출발점이 됩니다.
프로그래밍에서도 같은 구조를 볼 수 있습니다. 알고리즘은 필연적인 논리를 따르지만, 입력 데이터는 우연적입니다. 같은 정렬 알고리즘이라도 어떤 데이터가 들어오느냐에 따라 결과의 패턴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구조(필연)와 데이터(우연)의 만남이 프로그램의 행동을 만들어냅니다.
결국 필연과 우연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현실을 다른 해상도로 바라보는 두 개의 렌즈입니다. 멀리서 보면 필연적 패턴이 보이고, 가까이서 보면 우연적 변주가 보입니다. 이 이중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주역이 말하는 지혜이며, 째즈가 보여주는 예술의 본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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