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편의 일기(2025-07-23 × 2, 2025-07-24)를 쓰면서 한 가지가 선명해졌다. 우리가 겪는 고통 대부분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나온다는 것. 프로그래밍에서 쓰는 “객체지향(OOP)”이라는 도구가 이 구조를 놀랍도록 잘 드러내 준다.
이 글은 코딩 강의가 아니다. 일상의 고통을 해체하고, 관계를 다시 보고, “그냥 하기”를 실천하기 위한 생각 도구다. 코드 비유가 나오더라도 “아, 그런 구조구나” 정도로 읽어주면 된다.
TL;DR
- 문제는 객체가 아니라 시선의 산물이다 — 자각(Awareness)이 켜지면 대부분 “그냥 일어난 일(FactEvent)”이 된다.
- 관계는 가치 교환과 자유의 균형으로 지속된다 — 집착하지 않되, 도움이 되는 사이.
- 자각 = 행동이어야 한다 — “어떻게 하지?”를 묻는 순간 이미 지연이 시작된다.
- 삼독(탐진치)이 모든 고통의 뿌리 — 탐욕, 분노, 어리석음을 알아차리는 것 자체가 자유의 시작.
- 중도(中道) — 환상과 실제 문제를 구분하는 힘. 체념도 도피도 아닌 지혜.
전체 흐름 — 한눈에 보기
flowchart LR
LifeEvent["일어난 일"]
Awareness["자각"]
subgraph SufferingChecker["삼독 체크"]
탐["탐심(貪)"]
진["진심(瞋)"]
치["치심(痴)"]
end
ProblemEvent["문제로 인식"]
FactEvent["사실로 인식"]
Response["반응"]
ImmediateResponse["즉시 반응"]
ConditionalResponse["조건부 반응"]
Resolve["해결"]
NoProblem["문제 없음"]
LifeEvent --> Awareness
Awareness --> SufferingChecker
SufferingChecker --> |"삼독 작동"|ProblemEvent
SufferingChecker --> |"삼독 없음"|FactEvent
Awareness --> Response
Response --> ImmediateResponse
Response --> ConditionalResponse
ProblemEvent --> Resolve
FactEvent --> NoProblem
ImmediateResponse --> NoProblem
ConditionalResponse --> |"지연"| ProblemEvent
Resolve --> NoProblem도식을 따라가 보자.
**1단계: 일어난 일 → 자각.** 삶에서 무언가가 일어난다. 회의에서 빠졌든, 상사에게 지적을 받았든, 일단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이 자각(Awareness)이라는 렌즈를 통과한다.
**2단계: 삼독 체크 — 두 갈래로 나뉜다.** 자각이 켜진 상태에서 삼독 필터를 거친다. 탐심(욕망)·진심(분노)·치심(어리석음) 중 하나라도 작동하고 있다면, 그 사건은 **”문제로 인식”**된다. 삼독이 작동하지 않으면? **”사실로 인식”** — 그냥 일어난 일이다. 같은 사건인데 경로가 갈린다.
**3단계: 반응 — 또 두 갈래.** 자각은 동시에 반응도 만들어낸다. 여기서 **즉시 반응**하면 “자각 = 행동”이 되어 곧장 **”문제 없음”**에 도달한다. 하지만 **조건부 반응** — “어떻게 하지?”, “왜 이러지?” — 이 끼어들면 지연이 생기고, 그 지연이 사건을 **”문제로 인식”** 쪽으로 끌고 간다. 원래 별일 아니었는데 고민하는 사이에 문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4단계: 수렴.** 도식의 모든 경로는 결국 **”문제 없음”**으로 수렴한다. 사실로 인식하면 바로 도착하고, 문제로 인식했더라도 해결(Resolve) 과정을 거치면 도착한다. 차이는 **얼마나 돌아가느냐**, 그리고 **그 우회 경로에서 얼마나 고통받느냐**다.
정리하면: 최종 상태는 같다. 다만 삼독이 작동하거나 반응이 지연될수록 길이 멀어지고, 그 길 위에서 불필요한 고통이 쌓인다. 이 글은 그 우회를 최소화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다.
1부. 문제 해체 — 진짜 문제란 뭘까?
자각이 켜지면 대부분 사라진다
회사에서 회의에 빠졌다. 팀장이 나를 안 불렀다. 순간 머릿속에서 서사가 만들어진다. “무시당하는 건가?”, “내가 중요하지 않은 건가?” — 이 서사가 고통의 실체다.
객체지향으로 보면,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LifeEvent)은 원래 중립적이다. 그런데 자각 없이 받아들이면 자동으로 ProblemEvent(문제)가 되고, 자각이 켜진 상태에서 “정말 무엇이 문제인가?”라고 물으면 거의 다 FactEvent(사실)로 바뀐다.
# 자각 없이 → 자동으로 문제가 됨
event = "회의에 안 불림"
without_awareness = ProblemEvent(event) # "나는 무시당하고 있어!"
# 자각이 켜지면 → 사실로 돌아옴
with_awareness = FactEvent(event) # "회의에 안 불렸다. 그게 다야."
이 둘의 차이는 사건이 아니다. 보는 눈의 차이다.
삼독(三毒) — 고통의 세 가지 뿌리
법륜스님은 말한다. “우리는 주로 세 가지에 매여 노예 생활을 하고 있다.”
- 탐심(貪) — 욕망에 끌려다니는 것. “더 좋은 것”, “인정받고 싶다”,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 진심(瞋) — 뜻대로 안 되어 받는 스트레스. “소외감”, “서운함”, “왜 나만 안 되지.”
- 치심(痴) — 어리석은 분별. “어딘가에 완벽한 회사가 있을 거야”, “나는 특별해야 해.”
이 세 가지가 SufferingChecker라는 필터다. 어떤 사건이 들어왔을 때, 탐진치 중 하나라도 작동하면 그 사건은 ProblemEvent로 분류된다. 반대로 삼독이 감지되지 않으면 FactEvent — 그냥 일어난 일로 넘어간다.
핵심은 알아차림 자체가 해방이라는 것이다. “아, 지금 탐심이 작동하고 있구나.” 이 한 마디면 이미 한 발짝 물러나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진짜 문제의 기준: 아주 단순하다
삼독 필터를 통과한 뒤에도 남는 게 있다면, 세 가지만 묻자.
- 밥을 못 먹나?
- 잠잘 곳이 없나?
- 생존에 위협이 되나?
셋 다 아니라면, 대부분 FactEvent다. 불편할 수 있고, 속상할 수 있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해결하면 되는 일이다.
중도(中道) — 체념과 도피 사이
그렇다고 모든 걸 “괜찮아”로 넘기자는 게 아니다. 중도는 환상과 실제 문제를 구분하는 힘이다.
| 환상 | 실제 문제 |
|---|---|
| “어딘가에 완벽한 회사가 있을 거야” | 비윤리적인 업무 환경 |
| “당장 유창하게 영어하고 싶어” | 성장 기회가 전무한 상황 |
|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 | 건강을 해치는 근무 조건 |
환상은 내려놓고, 실제 문제는 지혜롭게 움직인다. 이것이 중도다. “더 나은”이라는 막연함 대신,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를 구체적으로 정의하는 것.
2부. 관계와 인정 — 집착 없는 관계의 조건
관계의 본질은 가치 교환이다
차갑게 들릴 수 있지만, 지속 가능한 모든 관계는 가치 교환 위에 서 있다. 직장이든 사적 관계든 마찬가지다.
- 직장 관계: 내가 기여하는 가치가 있고, 그 대가로 급여·성장·경험을 받는다. 지속 가능하면 계속하고, 아니면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 사적 관계: 정서적 지지, 실질적 도움, 진심 어린 관심 — 어떤 형태든 서로에게 가치가 흐르면 관계는 살아 있다.
핵심은 attachment = None이라는 기본값이다. 집착이 기본값이 아닌 관계. 매이지 않되 도움이 되는 사이.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 이 모델의 완벽한 예시다 — 무료로 가르침을 주고, 집착 없이 떠나보내되, 그 관계는 지속 가능하다.
떠남을 다루는 두 가지 자각
누군가가 떠날 때, 자각이 있으면 고통이 달라진다.
- 내가 떠날 때: “내 선택이다. 책임질 뿐.” — 후회 루프에 빠지지 않는다.
- 상대가 떠날 때: “그의 선택이다. 내 상처가 아니다.” — 서사를 만들지 않는다.
떠남 자체는 FactEvent다. 고통은 떠남에 덧씌우는 서사에서 온다.
자유 전략 vs 수행 전략
회사를 다니는 전략에도 두 가지 패턴이 있다.
자유 전략(FreedomStrategy): “도움이 안 되면 즉시 떠난다.” 단순하고 깔끔하다. 하지만 과거에 “떠남 → 그리움 → 후회”를 반복한 사람이라면 위험하다.
수행 전략(CommitmentStrategy): “3년은 수행 삼아 다닌다.” 떠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면 “아, 번뇌구나” 하고 알아차린 뒤 계속한다. 기간이 끝나면 그때 재평가한다.
이 둘은 상충이 아니라 상황별 전략이다. 후회 패턴이 반복되었다면 수행 전략을 기본값으로 삼는 게 현명하다. 후회 방지 시스템(RegretPreventionSystem)이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 과거 패턴을 분석해서, 어떤 전략이 나에게 맞는지 판단하는 것.
인정 욕구 — 가장 교활한 트리거
삼독 중에서도 특히 탐심(인정 욕구)은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인정 못 받는다는 생각 → 무시당한다는 느낌 → 회사 부정적 평가 → 이직 욕구 → 시간 지나면 진정 → 반복
이 사이클을 끊는 도구가 인정 욕구 회로 차단기다. 다섯 가지 전략이 있다.
- 물리적 차단 — “아, 또 그 패턴이구나” + 자리 이동, 물 마시기, 스트레칭.
- 시간 지연 — 감정 평가를 48시간 뒤로 미룬다. 대부분의 인정 욕구는 주관적 강도가 빠르게 떨어진다.
- 역발상 질문 — “내가 CEO라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인정이 아니라 재미로 한다면?”
- 가치 앵커링 — 아침: “오늘 창출할 가치 3가지.” 저녁: “오늘 실현한 가치 3가지.”
- 패턴 로그 — 2주간 기록: 날짜 | 트리거 | 강도(1-10) | 지속시간 | 실제 결과. 패턴의 허구성이 데이터로 드러난다.
특수 케이스 — 인정 결핍이 이직 욕구로 번질 때
일반적인 회로 차단으로 안 가라앉을 때를 위한 지연-해소 전략이 있다.
- 24시간 금지: 이직·퇴사 관련 커뮤니케이션이나 중요 결정을 금지한다. 알람만 설정.
- 완충 행동: 수면 / 산책 / 땀 나는 운동 20분 중 택 1. 자극 회피.
- 다음날 재평가(10분): 0~10 스케일로 점수. 7점 이상이면 구조적 해결(대화·역할 조정·피드백 요청·프로젝트 변경), 6점 이하면 종료.
- 로그 2문장: 원인과 배움을 기록. 같은 패턴이 3회 반복되면 개인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문제로 승격.
- 예외: 즉시 피해·법적 리스크·하드 데드라인은 지연 없이 처리.
우월/열등의 이진 트랩에서 빠져나오기
인정 욕구의 근본에는 이런 전제가 깔려 있다: “나는 특별해야 한다.”
이 전제 위에서는 인정받으면 우월감(일시적 안도), 인정 못 받으면 열등감(고통)이 된다. 어느 쪽이든 자유롭지 못하다. 탈출구는 전제 자체를 무효화하는 것이다.
class BinaryTrap:
false_premise = "나는 특별해야 한다"
result = {"인정받음": "우월(일시적 안도)", "인정못받음": "열등(고통)"}
def escape(self):
return "나는 그냥 나다" # 비교 자체를 무효화
평범함의 해방. 나는 70억 명 중 한 명이다. 불교적으로는 무아(無我), 실용적으로는 “오늘도 먹고, 일하고, 사랑했다.” 증명할 것도 없고, 비교 대상도 없다. 매일 점검할 건 딱 하나 — “남과 비교했나?” 이것만 “아니오”면 성공이다.
3부. 그냥 하기 — 자각과 행동 사이에 틈이 없다
벨이 울린다 → 벌떡 일어난다
이 단순한 문장이 세 번째 일기의 전부다.
벨이 울린다 → 벌떡 일어난다
영어회화 시간이다 → 그냥 시작한다
여기에 “어떻게 일어나지?”는 없다. “오늘 기분이 어떤지”도 묻지 않는다. 자각과 행동이 하나의 움직임이다.
“어떻게?”를 묻는 순간 이미 늦었다
우리가 흔히 빠지는 함정이 있다.
Step 1: “아, 하기 싫구나” (자각)
Step 2: “어떻게 할까?” (고민 — 여기서 이미 틀렸다)
Step 3: “시스템을 만들자” (계획)
Step 4: 안 한다
이것은 자각이 아니라 회피를 정교하게 포장한 것이다. 복잡한 의사결정 파이프라인을 만들어서, 그 안에 “하기 싫어”를 숨겨놓은 것이다.
진짜 수행은 이렇다:
class JustDoItResponse:
"""자각과 행동이 분리되지 않는 반응"""
def react(self, stimulus):
# "하기 싫구나" + "그냥 한다" = 하나의 움직임
# 알람 울림 = 벌떡 일어남
return "즉시 실행"
class ProcrastinationSystem:
"""회피를 정교하게 숨긴 시스템"""
_actual_feeling = "하기 싫어"
def elaborate_decision_process(self):
awareness = self.fake_awareness() # 가짜 자각
choice = self.fake_choice() # 가짜 선택
responsibility = self.fake_responsibility() # 가짜 책임감
return "다음엔 잘 할게" # 여전히 "하기 싫어"
뜨거운 걸 잡으면 즉시 놓는다. “어떻게 놓지?”라고 묻지 않는다. 수행도 마찬가지다.
즉시 반응 vs 조건부 반응
모든 반응은 두 갈래로 나뉜다.
즉시 반응(ImmediateResponse) — 자각과 행동이 동시에 일어난다. 관성이 확보되고, 반추가 최소화된다. 결과는 곧장 “문제 없음”으로 간다.
조건부 반응(ConditionalResponse) — 지연이 끼어든다. 지연은 번뇌를 증폭시킨다. “어떻게?”가 “왜?”로, “왜?”가 “난 왜 항상 이러지?”로 번진다. 결과적으로 사건이 ProblemEvent로 승격된다.
지연이 생길 때를 위한 가드레일은 세 가지다.
- 3초 리셋 — “아, 또 그 패턴!” → 물리적 전환(자리 이동, 찬물, 스트레칭) → “지금 할 일 하기.”
- 48시간 딜레이 — 감정적 판단을 48시간 뒤로 미룬다. 정말 중요한 건 48시간 뒤에도 중요하다.
- 패턴 인터럽트 — 즉시 차단 → 사실 확인(“구체적으로 무엇이 일어났나?”, “이게 나를 정의하나?”, “1주 뒤에도 중요한가?”) → 가치 재정렬.
통합 — 하루를 이렇게 산다
아침: 자각 켜기
- 깨어나자마자 세 가지를 떠올린다: 이전보다 나아지기. 프로세스 개선하기. 평범하게 살기.
- 삼독 모니터를 켠다 — 오늘 탐진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관찰할 준비.
낮: 트리거가 올 때
- 인정 욕구가 올라오면 → 회로 차단기 가동. 먼저 물리적 리셋, 그다음 시간 지연.
- 문제가 발생하면 → “정말 무엇이 문제인가?” 질문. 삼독 체크. 환상인지 실제인지 구분.
- 하기 싫은 일이 있으면 → 그냥 한다. 방법을 묻지 않는다.
저녁: 평정 점검
네 가지만 묻는다.
| 질문 | 이상적 답 |
|---|---|
| 정말 문제였나? | 아니오 |
| 남과 비교했나? | 아니오 |
| 그냥 했나? | 예 |
| 평범하게 살았나? | 예 |
법륜스님의 가르침
“우리는 주로 이 세 가지에 매여 노예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작게는 의식주에 묶여 있는 것이고, 크게 보면 자기의 욕망, 자기의 성질, 자기의 견해에 묶여서 인생을 고달프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 법륜스님, 삼독(탐진치)에 대하여
- 탐심(貪心) — 욕망에 끌려다니는 것
- 진심(瞋心) — 자기 성질대로 안 되어 받는 스트레스
- 치심(痴心) — 시비 분별, 어리석은 마음
알아차림이 시작이다. “아, 또 그 패턴이구나”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이미 한 발짝 떨어져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마무리 — 적용을 위한 메모
- 문제 인식: 배고픔·안전·주거 등 생존 레벨만 실제 문제로 간주하자. 나머지는 대부분
FactEvent. - 관계/회사: “도움이 안 되면 떠난다”와 “3년 수행”은 상충이 아니라 상황별 전략. 후회 패턴이 반복되면 수행 전략을 기본값으로.
- 실행: 알람·캘린더·타이머 같은 외부 자극을 “자극 → 즉시 실행”으로 연결해두면 망설임이 줄어든다.
- 인정 욕구: 주관적 강도가 빠르게 떨어진다. 48시간 지연을 습관화하자.
- 삼독 모니터링: 매일 탐진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관찰하고 기록하자.
- 중도 실천: “더 나은 곳”이라는 환상과 “실제 개선이 필요한 상황”을 명확히 구분하자.
태그: #객체지향사고 #자각과행동 #관계 #인정욕구 #수행 #평범함 #법륜스님 #삼독 #탐진치 #중도
카테고리: 철학, 프로그래밍, 마음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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