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어도 멈출 줄 알고, 하기 싫어도 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자유다”


우리는 자유롭다고 착각한다

하고 싶은 걸 하고, 하기 싫은 걸 안 하는 것. 대부분의 사람이 이것을 “자유”라고 부른다.

정말 그럴까?

배가 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눕고, 하기 싫으면 안 하고, 하고 싶으면 한다. 이건 자유가 아니라 감정에 끌려다니는 것이다. 개나 고양이도 하는 일이다. 선택지가 딱 두 개뿐인 삶 — 욕구가 시키는 대로 하거나, 혐오가 시키는 대로 피하거나.

법륜스님은 이것을 “절반의 자유 + 절반의 속박”이라고 부른다.


선택지가 2개인 사람

보통 우리가 감정 앞에서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다.

감정반응
하고 싶다한다
하기 싫다안 한다

야식이 먹고 싶으면 먹고, 운동이 하기 싫으면 안 하고, 공부가 지루하면 그만두고, 게임이 하고 싶으면 한다. 감정이 올라오면 자동으로 반응한다.

이것은 자유가 아니다. 감정이라는 프로그램의 기본 설정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프로그래밍에서 말하는 “기본 구현(default implementation)”이다 —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으면 자동으로 실행되는 코드.


선택지가 4개인 사람

수행자의 선택지는 다르다.

감정손실 판단반응
하고 싶다손실 없음하고 싶으니 한다
하고 싶다손실 있음하고 싶지만 멈춘다 ← 수행
하기 싫다안 하면 손실하기 싫지만 한다 ← 수행
하기 싫다안 해도 손실 없음하기 싫으니 안 한다

야식이 먹고 싶지만 건강에 손실이 있으니 먹고 싶지만 멈춘다. 운동이 하기 싫지만 안 하면 몸에 손실이 있으니 싫어도 한다. 공부가 지루하지만 안 하면 성장이 멈추니 싫어도 한다. 게임이 하고 싶고 손실이 없으니 하고 싶으니 한다.

차이가 보이는가? 감정은 똑같이 올라온다. 하고 싶은 마음, 하기 싫은 마음 — 이건 수행자도 마찬가지다. 다른 것은 감정에 자동으로 끌려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정이 올라오면 “이걸 따르면 손실이 있는가?”를 묻고, 그 답에 따라 선택한다.

이것이 완전한 자유다.

class FreeMind:
    """감정과 독립된 의사결정"""
    def handle_desire(self, desire):
        if desire.is_active() and self.will_cause_loss():
            self.stop()      # 하고 싶어도 손실이면 멈춘다
        else:
            self.proceed()   # 손실 없으면 한다

    def handle_aversion(self, aversion):
        if aversion.is_active() and self.avoiding_causes_loss():
            self.do_anyway()  # 하기 싫어도 손실이면 한다
        else:
            self.skip()       # 손실 없으면 안 한다

까르마는 자동 반복이다

왜 이렇게 어려운가? 우리에게는 까르마라는 자동 반복 패턴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것이다:

열정적으로 시작 → 과도하게 몰입 → 번아웃 → “이거 아닌 것 같아” → 포기 → 다른 걸 열정적으로 시작 → 반복

운동도, 공부도, 취미도, 심지어 직장도 이 사이클을 탄다. 스님은 이것을 “까르마를 따라가는 것”이라고 부른다. 과거의 패턴이 현재를 지배하는 것이다.

프로그래밍에서 이것은 상속(Inheritance)과 같다. 과거의 습관이 부모 클래스가 되어, 현재 행동이 자동으로 부모의 패턴을 실행한다. 내가 의식하든 아니든, super().handle_task()가 호출되어 똑같은 사이클이 돌아간다.

수행은 이 자동 호출을 자각하고 끊는 것이다.

“아, 지금 ‘포기하고 싶다’는 패턴이 올라오려고 하는구나.”

이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부모 클래스의 메서드를 호출하지 않을 선택권이 생긴다. 패턴이 올라오는 것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그 패턴을 따라갈지 말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그냥 하면 된다”가 답인 이유

법륜스님에게 질문자가 물었다. “하기 싫어지면 어떻게 하나요?”

스님의 답: “그냥 하면 됩니다.”

처음엔 너무 단순해서 답이 아닌 것 같다. “방법이 뭔데요?”, “시스템이 없나요?”, “마인드셋을 어떻게 바꾸죠?” — 이런 질문을 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것이 유일한 답인 이유가 있다.

“어떻게?”를 묻는 것 자체가 조건부 반응이다. “기분이 좋으면 한다”, “동기부여가 되면 한다”, “올바른 방법을 찾으면 한다” — 이것들은 전부 감정에 조건을 건 것이다. 감정이 조건을 충족시켜 줄 때만 행동한다.

수행은 조건을 제거하는 것이다.

5시에 일어나기로 했으면 일어난다. 기분이 좋든 나쁘든, 피곤하든 안 피곤하든. “일어나고 싶으면 일어나고, 일어나기 싫으면 안 일어나는 것은 특별히 연습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이라고 스님은 말한다. 그건 연습이 아니다.

하기 싫은데도 하는 것. 그것이 연습이다.

스님의 구체적인 예시

스님은 이렇게 풀어서 설명한다.

“3년을 하기로 했으면, 3년 동안은 싫어도 하고, 좋아도 하는 겁니다. 하기로 한 것은 그냥 하는 거예요.

저녁을 안 먹기로 했으면, 안 먹고 싶어도 안 먹고, 먹고 싶어도 안 먹는 겁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절을 하기로 했으면, 일어나기 싫어도 일어나고, 일어나고 싶어도 일어나고, 하기로 했으면 그냥 합니다.

순간순간 마음은 저항이 일어날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지만, 그것은 까르마가 반응하는 것이니 내버려 두고 ‘나는 하기로 한 것은 한다’ 이런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이 있다. “일어나기 싫어도 일어나고, 일어나고 싶어도 일어나고” — 좋을 때와 싫을 때 둘 다 똑같이 한다는 것이다. 감정이 뭐든 상관없이, 하기로 한 것은 한다. 감정을 판단 기준에서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스님은 까르마와의 관계를 분명히 짚는다.

“싫은 마음이 일어나서 그만두는 것은 까르마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지금 내 목표는 까르마를 극복하는 것이니까 싫은 마음이 일어나도 그냥 하는 겁니다. 등산을 하기로 했으면 다리가 아파도 가고, 다리가 안 아파도 가잖아요.”

등산 비유가 절묘하다. 등산할 때 다리가 아프다고 멈추는 사람은 없다. 다리가 아파도 가고, 안 아파도 간다. 왜? 정상에 가기로 했으니까. 수행도 같다.

농구선수의 연습

스님이 들어준 비유 중에 가장 와닿는 것이 있다.

“농구선수가 연습할 때 골에 공이 들어가도 다시 던지고, 골에 공이 안 들어가도 다시 던지는 것처럼, 연습할 때는 골에 들어갔느냐 안 들어갔느냐가 하등 중요하지 않습니다. 골에 들어가도 다시 던지고, 안 들어가도 다시 던지고, 그렇게 매일 몇 시간씩 연습하면 골에 들어갈 확률이 점점 높아지는 것입니다.

좋아도 하고, 싫어도 하고, 꾸준히 하다 보면, 나중에는 좋고 싫은 감정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게 됩니다.”

골이 들어가도 다시 던지고, 안 들어가도 다시 던진다. 결과에 감정을 걸지 않는다. 그냥 던진다. 그러면 실력이 올라간다. 수행도 마찬가지다. 기분 좋아도 하고, 기분 나빠도 하고, 꾸준히 하다 보면 — 어느 순간 감정에 끌려다니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일상에서의 적용

이것은 거창한 수행이 아니다. 매일의 작은 선택에서 시작된다.

아침: 알람이 울린다. 더 자고 싶다. 더 자면 손실이 있는가? 있다면 — 일어난다. 그뿐이다.

: “하기 싫다”는 마음이 올라온다. 알아차린다. “아, 과거 패턴이 올라오는구나.” 그리고 묻는다 — 안 하면 손실이 있는가? 있다면 — 한다.

저녁: 야식이 먹고 싶다. 먹으면 손실이 있는가? 있다면 — 안 먹는다. 하고 싶은데 멈출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자유다.

핵심은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의사결정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감정은 올라온다. 수행자도 하기 싫은 마음이 든다. 다만 그 마음에 자동으로 끌려가지 않을 뿐이다.


정리: 절반의 자유 vs 완전한 자유

 절반의 자유완전한 자유
선택지2개4개
기준감정손실 판단
하고 싶을 때무조건 한다손실 있으면 멈출 줄 안다
하기 싫을 때무조건 안 한다손실 있으면 할 줄 안다
패턴까르마 자동 반복자각 후 선택
결과감정의 노예감정으로부터 독립

스님이 말씀하신 “수행이란 꾸준히 하는 것”은 이 표의 오른쪽 열을 매일 연습하는 것이다.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게 아니다. 하기로 했으면 그냥 하는 것이다. 이래도 하고, 저래도 하고 — 그것을 “꾸준히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출처: 법륜스님 즉문즉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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